2010년 테러가 발생했던, 이라크 성모 마리아 구원교회.
2010년 테러가 발생했던, 이라크 성모 마리아 구원교회.

주후 7세기 시리아에 살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통치자 칼리프(Caliphate)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금 0.5온스(약 15그램, 약 4돈, 역주)를 바쳐야 했으며, 금을 바치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처단을 받아야 했다.

약 1,400년이 지난 후인 2014년, 시리아의 기독교인들은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됐다. 시리아 북부 라카(Raqqa)에 거주하는 20여 기독교 가정들은, 지난 2014년 2월 이슬람 반군에게서 보호 명목으로 650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돈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에는 7세기 기독교인들이 처했더 것과 동일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지난 2013년 5월 이슬람 반군단체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Greater Syria)는, 비교적 온건한 다른 시리아 반군 단체에게서 라카를 접수한 이후 이 마을을 그들의 이슬람 왕국의 수도로 천명했다.

라카에 있던 3천 명의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은 이미 마을을 떠났고, 몇 가정만 남아 있다. 그리고 라카를 장악한 ISIS는 참수와 태형을 가하는 아주 폭력적인 단체로, 알카에다도 이 단체와의 관계를 맺지 않고 있을 정도이다.

ISIS의 지도자는 기독교인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다른 이에게 기독교를 전파하지 않으며, 무슬림에게 들리지 않게 기도한다면 라카에 남아 있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라카의 기독교 지도자는 기독교인들에게 돈을 지불하라고 촉구했다. 기독교인들은 "ISIS에 돈을 지불하고,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또 십자가를 감추라"는 조언을 들었다.

현재 라카에 남아있는 기독교 가정들은, 대부분 마을 떠날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아 이슬람 반군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ISIL가 이라크 모술 지역에 위치한 선지자 요나의 무덤을 훼손하고 있다.
 ISIL가 이라크 모술 지역에 위치한 선지자 요나의 무덤을 훼손하고 있다.

전쟁과 반(反)정부 시위에 이은 혁명과 내전으로 지난 10년 동안 혼란했던 중동에서, 기독교인들은 힘든 시기를 겪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과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 아래에서는 비록 심각한 인권 탄압이 있었으나 기독교인들은 정권의 보호를 받았으며 비교적 안전하게 신앙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2011년부터 시작된 반(反)정부 시위 이후 민주적인 선거를 도입한 나라들은, 예외없이 이슬람주의자들이 집권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리아에서는 다수의 수니파 무슬림과 소수파 아사드 대통령 정권 사이의 내전이 발생하였다. 중동의 이러한 불안은 기독교인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이라크에서 약 1백만 명에 이르는 기독교인들이, 2003년 후세인 정권의 몰락 이후 이슬람 반군에 의한 공격과 테러 사건을 피해 자국으로 떠났다. 현재는 약 30만 명의 기독교인들만 남아 있다. 중동에 있는 다른 기독교 공동체들은 자신을 보호할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옛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 기독교 공동체는 지나 수십 년 동안 군사 정부를 지지해 왔으며, 2013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군부를 다시 지지하고 있다. 시리아의 기독교 공동체도 지난 40년 동안 이슬람주의자들의 집권을 막을 대안으로 아사드 독재 정권을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이렇게 독재 정권을 지지하거나 암묵적인 동조를 보냈던, 중국의 기독교 공동체는 자국이 민주주의로 나가는 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시리아 일부 기독교인들은 자국 교회가 내전 초기부터 정권의 탄압을 받은 이들과 연대했더라면 시리아 기독교인들이 지금의 시련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인권을 위한 투쟁이 소수 종교인 기독교 공동체에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교회 지도자를 비난하기도 했다.

오트만(Ottoman) 제국 시절 마지막으로 실시한 인구 조사(1914년)에서, 당시 기독교인은 중동 전체 인구의 25%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는 5% 이하이며, 중동의 기독교인은 세계 전체 기독교인의 1% 이하를 차지할 뿐이다. 기독교가 태동한 중동에서 기독교인이 현저히 감소하거나 완전히 소멸되는 것에 대해, 천주교는 물론 다른 기독교 교파들도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소수 공동체를 향한 관용은 현대 국가의 건강한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중동의 1,200만 기독교인 인구는 2020년에는 절반 정도로 줄 것이다. 중동 기독교의 감소는 기독교인의 탈출과 출산율 저하 때문이며, 아랍의 반정부 시위는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1992녀 시리아 저체 인구의 8%를 차지했던 시리아 기독교 공동체는 내전으로 전체 기독교인의 1/4가 자국을 떠났다. 2011년 이집트 반정부 시위와 무바라크 정권 몰락 이후 93,000명의 콥트(Copt) 기독교인들도 자국을 떠났다. 이집트 기독교 공동체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과 독재정권 사이에서 눈치를 보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집트의 군부가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르시(Morsi) 대통령을 축출했을 때, 이집트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종교 지도자인, 이슬람 알아자르(al-Azhar) 사원의 성직자(Grand Sheik) 아흐메드 엘타엡(Ahmed el-Tayeb)과 콥트교회의 교황 타와드로스(Tawadros) 2세는 군부의 편에 섰다.

이집트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자 8백만 기독교인들 중 많은 이들이, 소수 종교인 기독교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이슬람주의 정권에게서 기독교인을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는데, 군부의 쿠데타는 기도 응답처럼 보였고, 일부 기독교인들은 쿠데타의 주동자인 알시시(al-Sisi)를 메시야로 여기며 환영했다. 하지만 축출당한 이슬람주의자들의 분노는 곧바로 기독교인들에게 향했고, 이집트 역사상 가장 큰 폭력 사태가 뒤따라 일어나 이집트 전역에서 63개 교회가 공격을 당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의 상점과 고아원이 약탈당했다.

쿠데타 주동자인 알시시는 2014년 5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고, 기독교인들은 알시시를 지지했다. 이집트 기독교인들은 다수에 의해 선출된 (이슬람) 정권이 소수 종교 단체에게는 위협이 되는 것을 보며, 세속주의 성향의 군부를 선택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은 단기간에는 기독교인들의 이해를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역사라는 큰 흐름에서는 잘못된 편에 서는 것이라고, 미국 뉴욕에 위치한 연구소인 센추리 재단(Century Foundation)의 중동 분석가 마이클 와이드 한나(Michael Wahid Hanna)는 경고했다. 기독교인들이 독재자를 지지함으로써 종파 간 갈등을 악화시키고, 증오와 편견을 만들며, 기독교 공동체를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중동의 반정부 시위에서 보았듯이, 가장 견고했던 독재 정권이라도 수 일 내로 몰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나 연구원은 설명했다.

2011년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을 때,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은 변화의 바람을 감지했어야 했다. 수만 명의 시위대들이 카이로의 타흐리르(Tahrir)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의 하야를 요구했을 때, 당시 콥트교회 교황인 쉐누다(Shenouda) 3세는 기독교인들에게 집을 떠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쉐누다 교황은 시위가 이슬람 혁명으로 발전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기독교 공동체를 파괴시킬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교황의 전망은 어느 정도 맞았다. 시위 발생 1년 후 이슬람주의 정권이 들어섰으며, 대통령으로 당선된 무르시는 기독교인을 이집트 지도부에서 배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무르시 대통령 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을 향한 폭력은 줄어들었지만, 반기독교적 성향은 오히려 증가했다. 학교에서 기독교인 여학생들은 베일을 쓰도록 요구되었고, 교회는 예배 시간에 소리를 낮추라는 압력을 받았다. 의회를 장악한 이슬람주의자들은 새 헌법을 작성하면서 이슬람법을 다른 법보다 상위에 두며 기독교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누락시켰다.

군부의 쿠데타로 무르시 정권이 축출된 이후, 이집트의 기독교 공동체는 그 어느 때보다 군부와 밀착되었다. 하지마 독재자와 친밀은 기독교인을 오히려 취약하게 만들 것이다. 기독교인 뿐 아니라 여성을 포함한 다른 사회적 약자와, 심지어는 무슬림의 권리도 존중되는 나라가 세워질 때, 기독교 공동체는 진정으로 강해질 것이다.

현재 시리아의 기독교인은 근대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 신앙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있다. 현재 시리아에서 기독교인들이 잔인하게 공격을 당하고 살해당하고 심지어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고 있다. 물론 아사드 정권이 국제사회의 동정을 받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반군의 기독교인 처형 장면이 있는 비디오를 인터넷에 올리며 체제 선전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리아 기독교인들이 테러와 공격을 피해 자국을 탈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성직자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시리아 기독교인의 탈출 행렬은 가속화되었다. 아직 성직자들을 살해한 범인들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리아 기독교인들이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리아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사드 정권의 몰락은 시리아 기독교 공동체에게 비극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믿는다. 반군이 시리아 전역을 장악하면, 기독교인들을 축출할 뿐 아니라 학살할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다수의 시리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공동체가 중동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세속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 뿐이며, 이슬람 신정 국가보다는 독재 정권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동에서 기독교인들이 독재자를 지지하는 것은 일시적이 해결책일 뿐이며, 기독교 공동체가 중동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편은, 기독교인은 물론 모든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이를 지지하는 것이다. 세계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집트의 알시시 대통령이 독재자가 되지 않는다면 이집트 기독교 공동체는 그 규모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지만, 알시시 대통령이 무바라크처럼 독재자가 되거나, 기독교인들이 알시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 이집트 기독교 공동체는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즉 이집트 기독교 공동체의 운명은 현 군부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시리아의 상황은 이집트보다 더욱 좋지 않다. 기독교 공동체와 다수 종파인 수니파 무슬림 사이의 관계는 더욱 벌어졌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가난한 자들과 박해받는 자들, 그리고 억눌린 자들의 편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 시리아 성직자는 말했다.

/한국선교연구원 파발마 2.0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