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Photo : )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8)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고, 상대방이 내 입장이 되면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 입장이 되고, 여자가 남자 입장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신문사의 여성 논설실장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쓴 글을 읽고, 필자가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4년 3월, LA 카운티 슈퍼바이저 위원회가 특이한 안건 하나를 통과시켰는데, 앞으로 60일 이내에 소방국은 여성소방대원 및 구급 응급대원들의 유니폼과 개인 보호 장비를 여성의 신체 조건에 맞게 만들라는 내용입니다.

 논설실장은 그동안 여성 소방대원들이 남자 제복을 입고 일했을까 의심을 했지만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입니다. 회의에 참석한 여성 소방대원들은 유니폼이 너무 크고 무거우며, 몸에 맞지 않아서 화재 현장에서 빠르게 대처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분초를 다투는 상황인데도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추켜올리느라고 행동이 굼떴다고 증언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LA 카운티 소방국 소속 대원 3,145명 중 대다수는 백인 남성이고, 여성은 82명(3.8%)입니다.

 그동안 여성대원들은 남성들의 소방복을 줄여서 입었는데, 소방복 제조업체들이 여자 대원의 치수를 잰 후 그걸 남자 체형의 패턴에 적용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소매와 바지 안쪽 가랑이 길이가 길고, 흉곽은 크며,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에 곡선이 고려되지 않아 불편한 제복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는 소방대원뿐만이 아니라 경찰, 군인, 인명구조대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제복뿐만 아니라 군화, 모자, 배낭, 권총 띠, 방독면, 방탄복, 형광조끼 등의 장비에 모두 해당됩니다.

 Caroline E. C. Perez의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Invisible Women)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광범위한 통계 자료와 풍부한 사례를 적어 놓았습니다. 남성에 의해, 남성을 위해 설계된 이 세계가 어떻게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배제했는지를 기술과 노동, 의료, 도시계획, 경제, 정치, 재난 상황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평균 남성의 키, 몸무게, 근력에 맞게 설계된 도구와 장비는 당연히 여성에게는 너무 무겁거나 길고, 이런 장비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다보면 손목, 팔, 어깨, 허리, 골반 등의 뼈와 관절에 골절이 오거나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습니다.

 오랫동안 과학은 남체(男體)와 여체(女體)가 크기와 생식기능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같다고 여겨왔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육과 훈련이 남성 표준에 의거해 이루어졌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비정상적이라고 여겼습니다.

 여자는 크기만 줄인 남자가 아님을 학자들은 인체의 모든 세포와 조직과 장기는 물론 질병의 발병과 추위 증상에서도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심장 운동과 폐활량, 심장마비의 전조증상도 남자와 여자가 다르며, 심장마비 사망률이 여자가 더 높은 이유는 남자 증상을 기준으로 판단해 조기 진단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여자와 남자는 근육 분포와 골밀도, 호르몬이 다르며 척추 뼈의 간격도 다르고, 신진대사 체계도 다르며,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도 다릅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남자들이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남녀 차별은 철폐되어 이제는 여성들도 당당히 남자들이 하는 일을, 어떤 면에서 남자들보다 더 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여성 위주는 아니어도 남성과 동등한 정도의 대우를 받고 여성의 모든 조건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야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남녀평등이고, 역지사지의 정신입니다. 기독교는 차별을 철폐하고, 역지사지의 정신을 실현하는 종교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