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힐 장로교회 오명찬 목사는 2월 25일 주일예배에서 갈라디아서 5:16-26을 본문으로 '성령님을 따라 행하라!'는 여섯 번의 시리즈 설교중 그 마지막 설교로, '성령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세 가지 해답'에 대해 말씀을 전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진짜로' 믿으며 사는 사람>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보면,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이 되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성령님을 따라 행하게 되는 그 첫 번째 해답은, 1. 나는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예수님의 사람' 임을 믿어야만 한다. 라고 전했다.

오 목사는, 갈라디아서 5:24 본문에서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란, 문맥상 "내가 예수님께 속한 것을 믿는 사람"이고,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내 안에 거하고 계심을 '진짜로' 믿는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3:5에서 이미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언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는 믿음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엄히 경고했던 이유는, 바쁜 일상의 루틴 속에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고 계신 줄"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믿지 않고 사는 교인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5:4-5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심"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 진리를 믿지 않고 망각하며, 예수님과 별 상관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면, 결국 그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되는 중차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을 경고하셨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오 목사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입으로는 '예수님의 사람'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예수님이 항상 내 안에 거하신다'는 이 중대한 진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 채, 내가 삶의 주인의 자리에 앉아 주인처럼 진두지휘하며 사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나, "내 삶의 주인의 자리에 틈만 나면 내가 올라서서 지휘봉을 휘두르려는 이 악습관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아서, 우리는 매일매일 순간순간 삶의 보좌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훈련과 잡고 있던 지휘봉을 내려놓는 훈련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내 삶의 보좌에서 내가 내려오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성령님을 따라 행하며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정욕과 탐심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으며 사는 사람>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받은 사람들" 이 되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성령님을 따라 행하게 되는 그 두 번째 해답은, 2. 나는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이미 십자가에 못 받은 사람' 임을 믿어야만 한다. 라고 전했다.

오 목사는,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사람은 나의 정욕과 탐심을 주님의 십자가에 이미 못 박은 사람들"이라는 본문의 선언적 사실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정돈한 믿음의 세 가지 요소인 영어 약자로 'KAT' (Faith = Knowledge-Assent-Trust)를 언급하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란 다만 지식적 차원이나 감정적 차원에서의 믿음에만 국한되지 않고, 반드시 "지식적-정서적-의지적인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지나게 되는 삼중적인 믿음"임을 역설하였다.

믿음의 제1 요소는 'Knowledge(지식)'이다. 누구나 믿음의 첫 단추는 '지식적인 영역'에서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는 복음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2천년 전 나사렛에서 자라신 예수라는 분이 정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이 내 안에 믿을 만한 지식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십자가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어느 순간 그 설화 같던 이야기가 사실적인 지식으로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첫 그림을 보면 십자가에 예수님이 계신다. 그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에 관한 역사적인 지식이 내 안에 들어오면서 십자가의 믿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믿음의 제2요소는 'Assent(동의)'이다. 받아들인 십자가의 지식에, '정서적인 영역에서 동의'가 일어나게 된다. 두 번째 그림을 보면, 십자가에 주님만 덩그러니 계시지 않고, 이제는 그 주님의 십자가 밑에 어느새 내가 서 있다. 그 분의 흘리신 피가 나의 죄로 인함이라는 말씀이 정서적으로 동의되고, 그 분의 나의 속죄를 위해 흘려 주신 보혈이 믿어지고, 그 분의 죄사함에 감사하게 되는 단계이다. 내가 죄를 짓게 될 때, 그 분의 십자가를 보며 잘못했다고 회개하게 되고, 통곡의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한다.

믿음의 마지막 제3요소는 'Trust(의지)'이다. '의지적인 영역에서' 말씀을 마음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나의 삶 속에 매일 입술로 선포하며 나아가게 된다. 우리가 성령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믿음의 요소가 바로 이 요소인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주목받지 못 하는 믿음의 요소이기도 하다. 위의 세 번째 그림을 보면, 주님이 못 박히신 그 십자가에, 나도 주님과 함께 이미 못 박혔음을 믿음을 볼 수 있다 (갈 2:20; 5:24). 이 믿음의 의지적인 영역에서, 비로소 우리는 주님과 한 몸으로 연합되어 일상을 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 번째 단계인 '의지적인 영역에서'의 믿음, 즉 주님의 십자가에 나도 이미 함께 못 박혔음을 믿는 이 믿음이 있을 때, 나의 죄성(육신의 소욕)이 억제되고, 성령님을 따라(성령의 소욕) 행함으로, 비로소 성화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은혜에 의해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엡2:8). 그렇다면 구원의 서정안에서, '칭의'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지만, '성화'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말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는 '의지적인 믿음'을 견지할 때, 비로소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행동으로 순종하는 사람>

갈라디아서 5장 25절에,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성령님의 지시하심 따라 행동으로 순종하는 사람들" 이 되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성령님을 따라 행하게 되는 그 세 번째 해답은, 3. 나는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행동으로 순종하는 사람' 임을 믿어야만 한다. 라고 전했다.

오 목사는, "로마서 8:5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성령님을 따르는 자는 성령님의 일을 '생각'하기에, 우리가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걸으며 행동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정말 성령님의 생각인지 아니면 육신의 생각인지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편 119:105에, 주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고, '내 길에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가 내 안에 떠오른 A 라는 생각이 정말 성령님의 생각인지 아니면 내 육신의 생각인지를 올바르게 분별하려면, 다른 어떤 것보다 유일한 분별 기준인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는 연구를 전문적으로 깊이 배우지 않은 평신도께서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인지 아닌지 분별해 내기는 그다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 가지 실용적인 제안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주일 강단에서 정성껏 준비케 하셔서 선포해 주시는 말씀을, 주중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에 꼭 한 번 다시 들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때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지고,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새겨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새벽예배 설교 동영상도 매일 매일 주의깊게 들으며 묵상하는 습관을 갖어 보라. 그러한 주의 말씀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이 생각이 내 육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성령님의 지시하심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될 수 있을 것이다. 기록된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능력을 배양하여, 육신에 속한 생각과 성령님에 속한 생각을 분별함으로,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행동으로 순종하여, 성령님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